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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센델, 공정하다는 착각 - 1

<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아이비리그 부정입학 사태에 대해,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 사건에 연루된 '헐리웃 진보'(=강남 좌파?)를 비아냥 댔다.

라라 트럼프(트럼프 며느리)는 인터뷰에서

"헐리웃 엘리트들, 진보 엘리트들은 늘 '평등'을 주장했죠. 모두가 공정해야한다면서요.

그런데, 이거야 말로 '최고의 위선' 아닌가요?

그들은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갖은 일을 다하죠.

그 학교에 갈 수 있는 '진짜 자격'을 가진 아이들을 희생시키면서요."

 

입시의 윤리

사실 실력(=시험점수)은 경제적 지위와 구별해서 보기 어렵다.

SAT처럼 표준화된 시험(=수능시험)은 그 자체가 능력주의를 의미하며, 경제적으로 힘든 배경을 가진 학생이라도 노력하면 획득할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SAT 점수와 수험생 가정의 소득은 비례관계를 나타낸다.

더 부유한 집 학생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내신기반의 학종이 그렇지 않다는 의미도 아닌것으로 드러나고 있음 zz)

입시 문제에 사회가 목을 매는 현상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점점 불평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혹자는 오히려 불평등이 감소해서 상위 1%를 차지하기 위한 상위 그룹의 경쟁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너도나도 소수의 주요대학들만 선호한다.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모들은 소득격차가 벌어짐에 따라(=혹자는 격차가 완화되어 자기보다 더 나은 사회적 계층에 들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인생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그래서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녀의 삶에 개입(매니저 노릇, 학점관리 등)하게 되었다. 여유있는 부모라면 '적어도 자녀가 중산층의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이해할 만한 정서의 결과물이다.

좋은 대학의 졸업장은 그동안 함께 지내온 계층(=sky 입학, 전문직 획득, 강남살이)하고만 어울리고 싶어하는 사회계층의 경직성에 대한 최상의 대응책으로여겨진다. 특권층 부모들이 화들짝 놀라서 자녀의 명문대 입시(=sky 및 의대 진학)에 몰두하게 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능력 지표 획득하기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의 승리자들은 '나는 나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이 자리를 획득했다'고 믿는다.

명문대 간판(=각종 시험 합격)은 '능력의 지표'가 된다.

정당한 스펙으로 입학(=입사)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에 자부심을 가지고, 이것은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 여긴다. 그러나 사실 이 역시 문제가 있다. 입학이 헌신과 노력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정말 '오직 자기 스스로' 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그들이 스스로 해내도록 도와준 부모와 교사의 노력은 뭔가? 타고난 재능과 자질은 그들이 오직 노력으로만 성공하도록 했을까? 우연히 얻은 재능을 계발하고 보상해 줄 수 있는 사회에 태어난 행운은?

명문대 입학을 위해 요구되는 여러 노력 역시 '나의 성공은 내 스스로 해낸 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다. 만약 입시에 실패하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기 자신의 잘못'이라는 인식도 심어주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지나친 부담이며, 시민적 감수성에도 유해하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수성가한 사람, 또는 자기충족적인 사람으로 볼수록, 겸손을 배우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런 감성이 없다면 공동선에 대한 배려도 힘들어진다.  

 

대학 입시가 능력주의의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누가 여기에 맞는 능력을 갖췄는가?'는 오늘날 정치권의 주요 화두다.

표면적으로 이 논쟁은 공정성 논쟁인 듯 보인다.

'탐나는 물건이나 사회적 지위를 놓고 경쟁할 때, 모두가 정말로 공정한 기회를 갖고 있는가?'

 

능력주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는가?

직업의 귀천 없음을 무너뜨리고, 많은 이들이 엘리트는 교만하다고 여기게끔 달라지지 않았던가?

세계화의 승리자들이 자신들이 '얻을 만한 걸 얻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도록 그리고 '능력주의적 오만'에 빠지도록 바뀌지 않았던가?

 

엘리트층에 대한 분노가 민주주의를 위험 수준까지 밀어내게 될때,

그래서 정치가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다음을 고민해봐야 한다.

'과연 능력주의의 원칙에 따라 계층을 나누고 경쟁시키는 일이 공동선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심각하게 자문해봐야 한다.